세계유산축전 고령 지산동 고분군을 소개합니다.
옥전 고분군은 경상남도 합천군 쌍책면 성산리에 위치한다.
고분군의 명칭은 고분군에서 고대에 제작된 구슬이 많이 출토된 것과 고분군에 인접한 마을의 지명이 구슬과 관련되는 점을 근거로
‘구슬이 많이 나는 밭’이라는 의미로 ‘옥전(玉田)’으로 명명하였다.
4~6세기 가야연맹을 구성했던 고분군으로, 중심지이자 교통의 결절지인 황강 주변의 구릉지에 위치하며 다른 정치체, 주변국과 활발히 교류했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옥전 고분군은 20세기 중반까지 숲으로 덮여 있었으나, 1980년대 고고학 지표조사를 통해 가야시대의 고분군으로 밝혀졌다.
또한 묘제와 부장품을 통해 가야 시대 고분으로서의 중요성이 인정되어 1988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옥전 고분군에는 모두 53기의 봉토분이 분포한다. 4세기부터 6세기까지 목곽묘, 석곽묘, 석실묘가 순차적으로 축조되며,
다른 가야 정치체의 영향이 묘제에 반영되어 나타난다. 4세기에 축조된 목곽묘가 구릉지 중앙 정상부에 군집한다.
5세기 후반에 축조된 석곽묘와 석실묘가 구릉지 서측 정상부에 조성되어 있는데, 이 시기 고분에서는 가야 부장품 중 가장 화려한 금속공예기술을 보여주는 유물이 출토되었다. 6세기 전반에 축조된 고분은 구릉지 사면에 위치하고 있다.
가야의 멸망과 함께 고분군의 축조는 중단되었다. 구릉지의 동쪽 정상부에서 봉토가 남아있지 않은 목곽묘 100여기가 조사되었고,
구릉지 서쪽 정상부에서 석곽묘와 석실묘를 매장부로하는 10여기의 봉토분이 발굴조사 되었다.
지리적으로 황강을 이용한 교역을 통해 성장하였다. 석곽묘는 금관가야의 영향으로 주곽과 부곽의 구성이 나타나지만, 금관가야와는 달리 매장부 내부의 공간을 칸막이벽으로 구분하는 방식이 확인된다. 고분에는 대도·갑주·마구 등 무장적 성격의 무구류, 교역품이 다량 부장되었다.
특히 M3호분에서는 당시 최고 수준의 금공기술로 제작된 용과 봉황 장식의 대도와 금동장식 투구가 출토되어 가야 지배층의 위세를 가장 과시적으로 보여준다.
주변국인 백제의 금동관모와 청동그릇, 신라의 금동관, 신라를 통해서 유입된 서역의 유리잔, 일본열도의 갑옷을 통해 가야의 활발한 교류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