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유산축전 고령 지산동 고분군을 소개합니다.
대성동 고분군은 경상남도 김해시 대성동에 위치한다.
고분군의 명칭은 고분이 분포하는 지역의 명칭을 따랐다.
1~5세기 가야연맹을 구성했던 금관가야의 대표적인 고분군으로, 가야정치체가 공유한 고분의 여러 가지 속성의 이른 시기 유형을 잘 보여준다.
고분군이 형성될 당시에는 고분군 남쪽이 바다였으나, 점차 퇴적물이 쌓이고 20세기에 들어 여러 차례 매립공사가 이루어지면서 1970년대에 이르러 도시건설을 위한 넓은 대지가 조성되었다. 대성동 고분군은 1990년 도시개발 과정에서 고고학 지표조사를 통해 비로소 발견되었다.
이후 고고학 발굴조사를 통해 그 중요성이 인정되어 1991년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주변 일대가 유적공원으로 정비되었다.
금관가야는 김해만을 통한 교역을 기반으로 1~4세기 가야연맹의 유력한 정치체로 성장하였다.
금관가야의 최상위 지배층 고분군인 대성동 고분군은 김해분지 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1세기부터 5세기 후반까지 목관묘, 목곽묘, 석곽묘가 순차적으로 축조되었다.
초기에는 구릉지 주변 평지에 목관묘가 축조되고, 2세기 후반부터 구릉지 상부로 목곽묘가 확장해 간다.
3세기 후반부터 5세기 전반까지 구릉지 정상부에 매장부의 공간이 넓은 대형 목곽묘가 축조되고, 중·소형 목곽묘는 대형 목곽묘의 주위와 구릉지 사면부에 축조되었다.
5세기 후반에 구릉지 남쪽 끝에 축조된 석곽묘를 끝으로 고분의 축조는 중단되었다. 문헌에도 금관가야는 532년에 멸망하였고, 이후 김해지역은 신라에 복속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금관가야 멸망 이후 고분군에 무덤은 더 이상 축조되지 않았다.
대형 목곽묘와 석곽묘에 부장된 가야토기는 고배·기대·장경호로 구성되며 가야연맹의 공통적 장례풍습을 보여준다.
꺾인 아가리의 고배, 손잡이 달린 화로모양의 기대로 대표되는 금관가야식 토기가 성립된다.
중국에서 수입한 청동거울과 용무늬 허리띠, 북방에서 수입한 청동솥, 일본에서 수입한 청동제 의기 등의 교역품은 대성동 고분군을 조성했던 정치체가
중국-가야-일본열도로 이어진 동아시아 국제교역 체계에서 활발한 역할을 했음을 보여준다.